[토마의 노가다 라이프 #5] 인력소에 나가서 노가다를 하는 방법. 그리고 숙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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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의 노가다 라이프 #5] 인력소에 나가서 노가다를 하는 방법. 그리고 숙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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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준비는 끝났다. 이제 내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현장을 찾으러 갈 시간이다. 내가 처음으로 노가다를 시작했을 때 찾아갔던 곳은 인맥이 없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랬다시피 인력소였다. ‘꿀벌인력’이나 ‘두리인력’ 따위의 간판을 내건 인력소를 자신의 집근처에서부터 찾아보자. 가능한 큰 인력소가 일감도 많이 들어오기 때문에 더 유리하다. 그리고 가능한 일찍 인력소에 출근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침 6시를 넘기만 해도 사람이 금방 차기 때문에 나는 6시 이전에 출근도장 찍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제 인력소에 들어가서 소장에게 말을 걸어본다.


“안녕하세요, 일하려고 하는데 여기는 처음 왔는데요.”

“그래요? 그러면 신분증이랑 기초안전보건교육 이수증 주세요”


두 개의 카드를 제출하고 소장이 제시하는 소정의 서류를 작성하고 난 후, 대기실 의자에 앉아서 자신의 이름을 부를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이다. 소장은 당일 출력인원들의 공종과 경력, 성실성에 따라 필요한 인력을 선발하고 이름을 부르기 시작한다.


출력(出力) : 인력소에 나왔다는 뜻.
공종(工種) : 공정의 종류. 노가다에는 배관, 용접, 미장, 조적 등 다양한 기술이 있다.



“홍반장님, 오늘 A아파트 현장에 용접사 필요로 하니까 7시까지 B식당으로 가서 아침 먹으러 가세요.”


“이종철씨, 세곡동에서 조적공이 부족하다니까 8시까지 현장에 도착해서 이 번호로 연락하면 작업반장이 나올거에요. 현장이 조금 거리가 있으니까 지금 바로 출발하셔야 될 거에요.”


여기서 오랫동안 일한 사람들은 반장이라는 호칭을 붙여준다. 한사람, 한사람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면 인력소장의 지시에 따라 자신의 현장을 부여받고 인력소를 떠난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이름이 불리지 않으면 초조해지기 시작한다. 누구는 바로 일을 얻을 수 있고 누구는 어깨를 늘어트린 채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특히 처음 온 새내기일수록 기회는 적어지기 마련이다. 두려워하지 마라. 우리는 젊다. 젊음은 여기서 무기다. 인력소에 들어갈 때부터 느낄 수 있지만 젊은 사람이 별로 없다. 대부분이 나이가 든 어르신들이 많다. 드디어 당신의 이름이 호명된다.


“토마씨 오래 기다렸죠? B동에 신축도서관 현장에 자재정리인원 필요로 한다니까 가보세요. 처음 일한 사람도 할 수 있는거니까 가서 일도 배우고 해봐요. 7시까지 C식당으로 가서 아침먹으면 되고 여기 반장 번호 줄테니까 가서 연락해요. 일당은 13만원이고 계좌입금 해드릴게요.”


축하한다. 당신의 첫 번째 현장이 배당된 것이다! 이제 소장의 지시에 따라 식당에 가서 밥을 먹고 현장의 담당 반장에 따라 일을 하면 된다. 기본적으로 기술을 가진 직공, 즉 기공이 아닌 사람들은 보통인부라고 한다. 즉 당신의 노가다 분류코드는 보통인부인 것이다. 하지만 보통인부라는 단어를 쓰는 사람들은 별로 없고 멸칭하여 잡부라고들 한다.


잡부의 일당은 인력소에서 대부분 13만원에 형성되어 있고, 조금 더 힘든 경우는 14만원까지도 올라간다. 일은 8시부터 17시까지이며, 12시에서 13시까지는 점심시간이고 오전과 오후에 한번씩 30분의 휴식시간이 주어진다. 소규모 현장일수록 30분의 휴식시간이 지켜지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대부분은 준수하는 편이고 종료시간은 아주 칼과 같다. 사용자는 일을 더 시키고 싶을지 몰라도 노동자들은 17시가 되는 순간 다들 삽을 손에서 던져버린다.


그리고 나에게 일감을 선사해준 인력소에서 수수료 10%를 떼어간다. 즉 토마가 도서관에서 일을 마치고 난 뒤, 일당 13만원에서 수수료 1만 3천원을 뗀 11만 7천원이 계좌로 입금되는 것이다. 어떤 인력소는 일을 마치고 다시 인력소로 돌아와서 돈을 받는 곳도 있다. 만약 돈이 현장에서 현금으로 지급하는 거라면 수수료를 인력소에 선지급하기도 한다. 각 인력소마다 다른 시스템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자신에게 맞는 곳을 찾아가면 된다.


대부분 인력소 사람들은 대부분 거칠다. 밑바닥 인생들의 집합소라고들 하는데 내가 인력소에서 몇달 동안 일하고 어울려본 결과 그 말이 아예 그른 말은 아닌 것 같다. 하루 살아 하루 벌어먹는 어중이 떠중이들, 갑작스러운 실직으로 거리에 내몰렸지만 돈을 벌러 나온 가장들, 나처럼 멋도 모르고 노가다를 시작하려고 온 신출내기들. 여러 인간군상들이 인력소에 모인다. 다양한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모이는 만큼 다툼도 심하고 상식적이지 않은 일들이 벌어지기도 한다.


내가 느끼기에 인력소는 뭔가 수컷냄새가 강렬하게 나는 소굴처럼 느껴진다. 강한자가 살아남는다는 말처럼 인력소에서는 용접이나 배관 등의 기술을 가진 사람들처럼 능력이 있거나 젊은 사람들이 일을 얻어내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점점 밀려난다. 오늘도 나의 이름이 불릴 수 있을까 기다리는 노가다 아재들의 절박함으로 대기실의 공기가 무거워진다. 긴 시간 끝에 내 이름이 부리나케 소장 앞으로 달려나가 현장을 받고 그 곳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오늘도 공치는 날은 아니어서 다행이다.


이것이 대략적인 인력소를 통한 노가다 활동의 프로세스라고 할 수 있다. 아침 일찍 인력소에 나가 소장에게 현장을 할당받고 일을 마친 뒤, 수수료를 제한 돈을 손에 얻는 것. 11만 7천원을 점심시간과 휴식시간을 제외한 순수노동시간 7시간으로 나누면 16,714원이다. 잡부의 일당만 벌써 최저시급을 크게 웃돈다.


하지만 내가 이 블로그를 통해 진짜로 이야기하고 싶은 노가다는 숙식노가다, 속칭 ‘숙노’다. 인력소를 통해 노가다를 뛰는 것이 그냥 커피라면 숙노는 TOP다. 내가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것이 일반 노가다라면 숙노는 업체가 먹을 것도, 잠을 잘 곳도 제공해준다. 심지어 현장까지의 출퇴근까지도 신경을 써준다. (이는 업체에 따라 다를 수도 있다.) 그리고 숙노 현장은 대부분 인력소가 소개해주는 현장과는 차원이 다른 대규모 현장이기 때문에 여러 면에서 체계적이고 안전하다. 그리고 현장에 나오는 인력들이 조금 정제되어 있다. 이번 포스트에서는 인력소의 생리에 대해서 간단히만 언급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숙노를 통한 노가다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 대해서 자세하게 이야기하겠다.

본문 : https://m.blog.naver.com/2u4ever/222227303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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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총 1
개후 2021.02.17 22:06  
인력들이 조금 정제되어 있다 = 병신이 걸러지기도 하지만 병신중에 상병신이 오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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